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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 21세기 대한민국은 신분제 사회인가?
*다음 자료들을 참고하여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이 신분제 사회인지 아닌지를 따져 봅시다.
[자료 1]
(가) 어떤 개인이 사회에서 처한 상황에 따라 나뉘는 계층과 달리 신분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신분의 가장 큰 특징은 혈연적 관계에 의해 세습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열심히 일해도 하위의 신분은 운 나쁘게 태어난 죄로 고달픈 생을 살다가 마감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 계층이 형성되고, 계층 간 이동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고착화된다면
그 사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계층이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혈연에 의해 상속된다면 단순한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의 문제가 된다.
*계층(social stratification , 階層) : 다양한 사회적 가치에 의해 서열화된 위치의 집단
•구분기준 : 경제적 요인에 따른 계급, 사회적 위신에 따른 지위, 정치적 위치에 따른 권력
<출처 : 고등학교 사회문화(지학사) 교사용지도서>
*계급(class , 階級) : 경제적 요인에 따라 나누어진 대립적 집단
•구분 기준 :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
<출처 : 고등학교 사회문화(지학사) 교사용지도서>
*오늘날의 계급과 계층 개념 : ① 엄격하게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음
② 용어 선택의 논쟁보다는 사회불평등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짐
<출처 : 고등학교 사회문화(지학사) 교사용지도서>
*신분(身分) : 법적 지도나 사회적 통념에 의해 결정되는 개인의 지위나 자격으로 전통사회의 사회적 불평등을 표현하는 개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나) 헌법 제2장 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와 2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부모와 재산 및 신분과 무관하게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사회적,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 적어도 절차적으로는 -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출처 : 인터넷 자료>
[자료 2]
(가)
통계청이 전국 1만8576가구에 상주하는 만 13세 이상 가구원 약 3만9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5년 사회조사'에서 국민들의 계층상승에 대한 인식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생동안 노력을 하면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21.8%에 그쳤다. 계층 상승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국민이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계층 상승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9년까지만 해도 35.7%가 노력을 하면 계층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했지만, 2011년 28.8%, 2013년 28.2%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불과 6년 새 13.9%포인트가 떨어진 것이다.
다음 세대인 자녀 세대의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커졌다. 자녀세대가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 국민은 전체의 31%에 불과했다.
2009년 이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48.4%였지만, 2011년 41.7%, 2013년 39.9%에 이어 올해는 더 큰 폭으로 추락한 것이다.
<매일경제(http://news.mk.co.kr), 2015.11.26.>
(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수저구분표에 따르면 부모의 자산과 수입을 기준으로 수저를 구분하는데, 금수저(자산 20억원 이상 또는 수입 2억원 이상), 은수저(자산 10억원 이상 또는 수입 8000만원 이상), 동수저(자산 5억원 이상 또는 수입 5500만원 이상), 흙수저(자산 5000만원 미만 또는 수입 2000만원 미만)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교육과 취업의 질이 정해지고 인생이 결정된다는 진단이다.
< News1, "청년 新계급론…'헬조선에선 아무리 노오력해도 흙수저'", 2015.10.15.>
(다) 1~10위권 대학 진학 비율을 살펴보면 고소득층(중위가구소득*의 3분의 4 이상) 가구 자녀가 7.4%를 차지하여 0.9%를 차지한 저소득층 (중위소득의 3분의 2 이하) 가구 자녀 보다 8.6배가 높았다. 고소득층 가구의 자녀들은 11위~20위권 대학 진학 비율에서도 10.2%를 차지하여 1.9%를 차지한 저소득층의 자녀 보다 5.3배 높은 비율을 보였다. 반면 21위 이하 4년제 대학 진학률에서는 가구별 소득수준과 진학 비율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부모의 소득이 많을수록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이는 취업 이후 임금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1~10위 대학 출신의 임금 노동자의 월평균 중위임금*은 290만원인데, 이는 21위 이하 수도권 4년제 대학 출신의 200만원, 지방대 출신의 180만원보다 90만에서 110만원이 많은 액수이다. 11위~20위 대학 출신자의 중위임금은 240만원으로 역시 21위 이하 대학출신의 임금근로자의 중위임금보다 높았다.
*중위소득 : 전국의 모든 가구를 소득별로 순위를 매겼을 때, 한가운데 위치하는 가구의 소득
•2016년도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 중위소득 가구별 금액
내용
가구원 수 |
1인 |
2인 |
3인 |
4인 |
5인 |
6인 |
기준 중위소득 |
2015년 |
1,562,337원 |
2,660,196원 |
3,442,364원 |
4,222,533원 |
5,003,702원 |
5,784,870원 |
2016년 |
1,624,831원 |
2,766,603원 |
3,579,019원 |
4,391,434원 |
5,203,849원 |
6,016,265원 |
<보건복지부 제공>
*중위임금 : 근로자를 임금수준 순으로 늘어놓았을 때,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부터 중앙에 위치하는 근로자의 임금
<한겨레신문, "'흙수저'는 '노오력'해도 '흙수저'?", 2015.10.15.>
[자료 3]
(가) "잠시 청년들에게 물어주십시오. 줄줄이 늘어선 초록색 빈 병으로 어지럽혀진 대학가의 술집 취객에게, 외로움을 둘 공간조차 없이 비좁은 고시원의 세입자에게, 자정의 어둠을 몇 달째 지켜온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나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주십시오. 그들은 서슴없이 멸망을 입에 담을 것입니다. 감히 멸망을 말하지만 악의조차 감지되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에 당신들은 경악해야 합니다. (…)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릅니다. (…) 이 나라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기업 매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 뿐 기업소득과 개인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OECD 최하위권에 머뭅니다. 오로지 기업만이 암세포처럼 무한히 자라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국민소득이 30만 달러를 돌파하고, 세계 100대 기업 명단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채워진들, 우리 각각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는 높다란 탑을 쌓아올린 뒤 먼발치에서 그 웅장한 풍채를 감상하는 게 이 나라 경제의 목표였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1부①우린 붕괴를 원한다]손아람 작가 신년 특별 기고-망국(望國)선언문(2015.12.31.)>
(나) 우리 솔직해 집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일본을 탓했을 것이고, 군사 정권 때 태어났다면, 군사 정권을 탓했을 겁니다. IMF때 직장인이었다면 나라를 탓했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흐르고 사회는 굴러갑니다. 우리가 탓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본인의 노력으로 본인이 목표한 것을 이뤄냈을 겁니다. 어떤 목표를 위하여 수 년, 수십 년을 노력한 사람들도 있는데 고작 본인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물인 대학을 나와서 "나는 ○○대학 출신이라 안 돼" 또는 그냥 대학 1년, 2년 평소에는 그냥 남들이 하는 만큼 하다가 "노력하는 척"만 조금 했을 뿐인데 "아 나는 노력했는데 망할 역시 헬조선"이라는 식의 태도는...뭐랄까..배부른 소리(?)가 아닐까요?
<출처 : 부산대대나무숲 178번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중에서 발췌>
요람에서 무덤까지 헬조선
- 21세기 대한민국의 청년, 장년, 노년은 왜 ‘헬조선’이라 말하는가?
*아래의 자료를 참고하여, 21세기 대한민국의 ‘청년’, ‘중장년’, ‘노년’ 중 하나를 택해서, 이들이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논해봅시다.
1) 청년
2) 중장년
은퇴를 앞둔 중소기업 부장 김모씨(52)는 뉴스에서 '임금피크제'란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치민다.
김씨는 "저성장 시대에 기업들이 고용을 꺼리고, 정부는 실효성 떨어지는 정책을 남발해 청년고용이
부진한 건데 마치 기성세대들이 청년일자리를 뺏는 것처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들도 노후걱정, 자식 결혼 지원에 고민이 마를 날이 없다는 것.
결혼 5년차인 대기업 직장인 최모씨(37)는 전세 만기를 5개월 앞두고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부동산을 수소문해 봐도 전세는커녕 반전세도 귀하다. 그마저 매달 월세나 이자부담이 크다.최씨는 "신혼부터
아내와 부모님 도움 없이 잘 살자고 했는데 자꾸 무너진다. 야근에 주말근무에 지쳐 쓰러지듯
열심히 살아도 집 한 채 못 구하는데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이모씨(49)는 "'헬조선'
이란 말을 듣고 단어가 주는 막막한 느낌에 공감했다. 퇴직금으로 차린 가게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손님이 적다.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무기력감을 느끼고, 정부를 탓하는 것도 지친다"고 말했다.
직장과 육아를 함께하는 '직장맘' 이모씨(30)는 출산한지 한 달 만에 다시 직장으로 향해야 했다. 눈치 주는 직장 분위기보다
외벌이로는 당장 대출이자를 갚기도 빠듯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신혼여행 다녀왔던 사진을 훔쳐보며 외국에서 느꼈던
여유를 그리워한다. 이민가고 싶단 생각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 탓도 지친 '헬조선' 백성들…"한번 흙수저는 평생 흙수저" / 머니투데이 / 2015.10.5.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40대에 이른 정점을 찍은 뒤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사오정’(45살에 정년퇴직), ‘오륙도’(56살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같은 말이 상징하듯 크게 늘어난 희망퇴직·명예퇴직 등 조기퇴직의 결과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중년층 이상 고용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1일 김세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임금과 생산성 국제비교’ 자료를 보면, 30살 미만 노동자의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 노동자의 임금은 30~39살 151.9, 40∼49살 174.1로 급상승하다, 50~59살 158.4, 60살 이상에서는 106.2로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한국이 중·장년층의 ‘임금절벽’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난다. 영국·독일 등이 포함된 유럽연합(EU) 소속 15개국은 30살 미만 노동자의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30대 140.4, 40대 155.8, 50대 160.8, 60대 이상 165.2 등 완만한 오름세를 끝까지 유지했다. 우리와 비슷한 임금체계를 갖추고 있는 일본도 40대 172.7, 50대 176.0으로 50대에 정점을 찍은 뒤 60살 이상이 되면 119.4로 낮아졌다. 유럽에선 한국과 같은 ‘임금 절벽’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일본만 해도 10년을 더 준비한 뒤에 보다 완만한 낭떠러지를 만나게 되는 꼴이었다.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론 한국 노동자들의 짧은 근속연수가 첫손에 꼽혔다.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통계청이 지난 10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5’를 보면, 지난해 임금 노동자의 52.8%가 3년 미만 단기 근속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10년 이상 근속자는 20.6%에 그쳤다. 또 전체 임금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6.1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년층 40대이후 ‘임금절벽’ 심각하다 / 한겨레신문 / 2015.12.21.
3) 노년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 당 12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다.
이는 OECD 평균인 10만 명 당 18명보다 6배나 높은 수준이다.
한 사회복지 전문가는 “노인 자살 충동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빈곤, 신체·정신적 장애와 질병,
소외와 고독”이라며 “사회 전반적인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화하다 보니 타인과 비교를 통한 자괴감도 더 커지고
이것이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더는 경제생활을 하지 못하는 노인이 신체·정신적 장애와 질병 등으로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고 느낀 후 의식주나 의료 처치 등 최소한의 자기보호도 하지 않는 노인도 늘고 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을 스스로 내버려두는 ‘자기 방임’ 학대 노인은 심각한 경우 극단적인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관리가 필요하다.
60세 이상 노년층 가구에서 빈곤 문제도 크게 늘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는 빈곤했으나 2014년에는
빈곤하지 않게 된 비율은 18.9%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20~50대가 모두 절반이 넘게 빈곤에서 탈출한 데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가출이나 노숙 등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고, 2014년에도 4년 전의 빈곤상태를 탈출하지 못하는
가구가 81.1%나 돼 노인 가구의 빈곤 상태 고착화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 OECD 1위…고착 된 빈곤 문제
배달사원 승강기 사용 자제
– 차별
원래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발명품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정한 상식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고 있을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모두 평등하고, 평등한 인권을 지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같은 인간의 평등성을 실현하지 않고 있다.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우수하거나 열등함을 암시하거나, 표면화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례가 역사 속에 존재한다.
2016년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자.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다른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있다.
이들을 우리는 비정규직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정년을
보장 받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하여 정년을 보장 받지 못한 채, 일정 기간 동안만 일시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다. 실질적으로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단기간(1~2년)계약을 하며, 고용계약기간을 고용자가
연장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음 재계약을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은 일의 필요에 따라 외부 업체의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쓰고자
만들어진 제도였다. 하지만 기업들은 고용이 부담스러운 정규직 직원을 적게 고용하기 위해
비정규직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래에서 제시한 기사와 같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차별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또 다른 차별의 양상은 어떠하며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7일 새벽 3시40분 □□지역 ○○동 △△아파트 들머리. 40대 박은자(가명)씨의 손에는 신문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박씨는 14층짜리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서 경비실을 살폈다. 경비원은 잠들어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탔다. 비슷한 시각 정영자(가명·53)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아파트 입구에 나타났다. 우유팩 30개가 담긴 상자를 든 정씨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복도를 살폈다.
밖에 나온 주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박씨와 정씨는 벌써 열흘째 아파트
경비원과 주민을 피해 다니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전체 27개 동 입구마다 ‘배달사원 승강기
사용 자제’라고 적힌 경고문(사진)을 붙였다. “배달사원(신문·우유 등)들은 배달시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여 배달해
주시기 바란다”고 적혀 있다. 직장과 육아를 함께하는 '직장맘' 이모씨(30)는 출산한지 한 달 만에 다시 직장으로 향해야
했다. 눈치 주는 직장 분위기보다 외벌이로는 당장 대출이자를 갚기도 빠듯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신혼여행
다녀왔던 사진을 훔쳐보며 외국에서 느꼈던여유를 그리워한다. 이민가고 싶단 생각도 많다"고 말했다.
…(하략)…
한겨레 2012.08.07.
ㄱ씨는 A대 학생이다. 한국 사회 학벌의 꼭짓점이라 불리는 대학에 다닌다. A대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그의 부모님은
“전교 1등이 한국 1등이 됐구나”라며 좋아하셨다. 현실은 부모님의 기쁨만큼 찬란하지 않았다.
ㄱ씨는 농어촌 전형으로 A대에 입학했다. 부모님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그를 A대 학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의 일부 이용자들은 ‘기균충’이라 불렀다. 농어촌 전형이 포함되는 기회균형선발전형에
‘벌레 충’(蟲)자를 붙인 말이다. 커뮤니티에선 지역균형선발을 비하한 ‘지균충’이란 말도 사용됐다.
A대가 대학 서열의 최상위일지라도, A대에서 그의 서열은 벌레에 불과했던 셈이다.
…(중략)…
B대를 졸업한 ㅎ씨도 “정시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농어촌 전형으로 들어온 친구가 학과 등급을 깎아먹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수능점수에 따라 학과에 대한 기여도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한국 대학사회는 파편화된 개인들이 서로를 꺾고 눌러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이 되고 말았다.
이렇다보니 입시철만 되면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대학을 검색해보는 학생도 있다. ㅎ씨는 “부끄럽지만
‘내가 다닌 대학이 비교 대학보다 낫다’는 평을 들어야 검색을 멈추게 된다”며 “일종의 인정투쟁인 셈”
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맞세우며 비교우위를 찾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하략)…
한겨레21 2014.07.18.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임대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통로를 막아서 저소득층이 중산층 단지 내 길조차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심지어는 □□지역 어느 학교에서는 같은 학교에 배정된 임대 아파트의 학생들과는
자녀들을 한 반에서 배우게 할 수 없다고 학부모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민간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학생들이 따로 반을
구성한 적도 있다. 재산규모에 따라 사람을, 심지어는 그 소득차이에는 아무 책임도 없는 자녀들까지 차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사고가 얼마나 저급한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버젓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아파트 탓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아파트 탓이라기보다는 아파트의 단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주에도 잠시 언급했듯이 건축가 ○○ 교수는 아파트 한국사회라는 책에서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 모든 주택지를
단지화하는 주택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단지 아파트가 단지가 가장 많아서 아파트의 문제로 비칠 뿐이라는 것이다.
…(하략)…
한국일보 2014.08.03.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 살벌한 경쟁... 출구는 없는가?
얼마전 연세대학교 의대는 평가 방식의 변경으로 화제가 되었다. 다음은 관련 기사이다.
[연세대 의대 절대평가 도입 2년]
성적 평균 5.4점 올라.. "동료가 敵 아닌 친구로 보여요“
....상략....
미국 상위 25개 의대와 일본 교토대 오사카대 의대 등은 오래전부터 절대평가를 해왔지만
국내 의대들은 “방대한 의학지식을 암기하려면 경쟁교육밖에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 중략.....
연세대 의대가 절대평가를 도입한 건 “고교 성적 상위 0.1∼0.5%의 영재급 학생들이 들어와
열심히 공부하는데 왜 점점 좌절감을 느끼고 세계적인 의학교수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상대평가에서는 학생들을 무조건 줄을 세워 0.1점 차이로라도 등급을 가른다. 1∼10등은 괜찮겠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절망한다.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성적에 절망하고 자신감을 잃는다. 실제로 연세대 의대가 학생들을 상담했더니
“친구들이 다 적으로만 보인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절대평가 도입 뒤 학생들의 학습태도나 교우관계도 점차
향상됐다. “동료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게 돼 긍정적”, “평가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오히려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절대평가 도입으로) 학습동기는 2014년 1학기 평균 4.21점(7점 만점)에서 2학기에 4.73점으로 높아졌다.
자기효능감은 2.84점(5점 만점)에서 3.63점으로, 집단이 상호협력하고 단결하는 정도는 3.66점(5점 만점)에서 3.72점으로
올라갔다.
동아일보 2016.04.07
절대평가가 상대평가와 달리 학생들의 학습 태도는 물론 인간관계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면 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대평가를 고집하는 것일까? 미국, 일본 등 유수의 의대에서는 오래전부터 해오는 절대평가 도입을 무엇이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해 방영된 ‘SBS 미래한국리포트 2015 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에서 우리 사회가 삶의 중요한 가치로 꼽은 두 가지는 ‘경쟁’과 ‘성공’이었다. 관용과 경쟁을 선택한 네덜란드, 경쟁과 평등을 선택한 미국 등과는 비교되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무한 경쟁 사회’,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다. 단 한순간도 경쟁이 아닌 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방송에서조차 서바이벌식 경쟁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1인의 최종 승자를 위해 나머지는 존재한다.
진화론의 적자생존 논리가 인류사회에 적용된 이래 경쟁은 인류사회를 발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기재로 받아들여졌고, 이러한 논리는 전세계를 경쟁 속으로 내몰았다. 개인간 경쟁, 국가간 경쟁에서 승리하여 생존할 것을 주문한다. 적자만이 생존할 것이니 생존한 적자가 인류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경쟁에 대한 부작용이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누군가를 인생의 낙오자 혹은 실패자로 만들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고의 편협함을 조장하고, 협력적 해결을 방해하는 반사회적 기재라는 것이다. 경쟁이 자리잡은 사회에서 배려나 협력의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패배자가 받을 배려는 없기 때문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사회를 살벌하게 한다. 그래서 생존을 위협받지 않기 위해 이른바 무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1등만 기억할 뿐이다”라던 모회사의 광고카피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한 개그맨의 풍자로 씁쓸한 웃음을 주었지만 사회는 여전히 경쟁을 통한 성과와 선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쟁에 지친, 혹은 낙오된 많은 이들이 헬조선을 외치지만 오늘도 우리는 경쟁 속에 살고 있다.
무한경쟁이 만들어낸 헬조선,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일까?
말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
– 우리도 정치 좀 합시다!
2016년 기준으로 지구 인구수는 74억 명이다. 이 인간의 족보를 보면 400만 년 전 원숭이에서 분화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한 종이 이 엄청난 수로 불어났다. 이렇게 불어난 인류의 특징은 대체로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도구를 만드는 동물’, ‘공동체(정치)를 꾸리는 동물’,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 ‘생각하는 동물’이다.
네 가지 특징을 다시 정리하면 인간은 ‘도구’를 가지고 지구상의 어느 동물도 엄두조차 내지 못한 ‘공동작업’을 통해 매머드 사냥을 하였다. 이 ‘공동작업’을 하면서 손짓, 몸짓으로 자기 ‘생각’을 나타내면서 다른 동물이 가지지 못한 ‘언어’를 발명하여,
지금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눈에 보이는 구체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추상 영역까지 표현할 정도로 발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류 진화가 모든 인류에게 생존과 축복을 준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공동체’는 ‘도구’를 비롯한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소유 정도에 따라 인간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이원화하였다. 이 계급 이원화의 핵심은 지배계급이 권력을 만들어,
피지배계급을 복종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두 계급관계의 형성 후에 인류역사는 이 두 계급의 지배와 갈등, 저항의 역사이다.
그러면 이 계급 갈등과 저항의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원시시대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것이 ‘무력[전쟁]’이다. 그러나 이 ‘무력[전쟁]’은 후유증이 너무 심하다.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 후유증을 피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선택한 근대의 권력은 ‘법’, ‘말’과 ‘조문’, ‘전통’이라 정리했다.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세르방’의 말을 인용해서 ‘어리석은 전제 군주는 노예들을 쇠사슬로 구속할지 모르지만, 참된 정치가는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강하게 관념의 사슬로 노예들을 구속한다. 정치가가 사슬의 한쪽 끝을 붙잡아 두는 것은 이성이라는 고정된 측면이다.
또한 그 사슬은 우리가 그 구조를 모르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단단히 조여드는 것이다 (중략) 가장 튼튼한 제국의 흔들리지 않는 기반은 인간의 부드러운 두뇌 신경 조직 위에 세워진 것이다.’라고 하면서 현대에
와서는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신체는 자유롭게 하지만 영혼을 얽매고 있다.’ 분석한다.
자기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피지배계급’이 지배를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첫째 조건은 자각이다. ‘만적’과 ‘스파르타쿠스’가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깨달은 것은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각’이다. 자각 후에 그들이 한 최초의 행위는 말이다.
‘만적’은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느냐?’고 다른 종들을 모아 거사를 도모했고, ‘스파르타쿠스’ 역시 70명의 검투사들에게 ‘구경꾼의 노리개가 되느니, 싸워서 자유를 되찾자’고 설득했다.
역사로 보며 한 개인이 누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다른 이들의 희생으로 얻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누가 만들어 주거나, 시간이 지난 후에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내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고, 지금 만들어야 한다.
억압과 지배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원하는 피지배계급은 자각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처음 할 일은 내 머리 속 ‘부드러운 두뇌 신경 조직 위에 세워진’ 사슬부터 풀고 녹여야 한다. 그러면 사슬은 어떻게 풀고 녹일 것인가? 먼저 내 자각(생각)의 표지인 누구의 ‘말’도 아닌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내 ‘말’을 써야 한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의식이 배어있는 지배언어를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어용사전』(박남일, 서해문집 107쪽)의 ‘민영화’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공적으로 소유한 기업을 사적 자본에 넘겨 경영토록 하는 것을 영어로 ‘privatization’한다. 이 말은 ‘민영화, 사영화, 사유화’ 등 세 가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는 ‘사영화’와
‘사유화’는 애써 기피하며 ‘민영화’를 공식 용어로 쓰고 있다. 사적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대중심리를 비켜가려는 비즈니스 레토릭(rhetoric)일 터이다” 같은 번역어이지만 ‘사영화’와 ‘사유화’ 그리고 ‘민영화’는 뉘앙스 즉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다.
이처럼 모든 언어는 정치성과 경향성을 가진다. 언어는 만국, 만인이 공통으로 누리는 공정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가진 뇌 속의 프레임에 따라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과 몸이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버스 요금 인상’과 ‘버스 요금 현실화’ 이 두 말은 언뜻 들을 때는 같은 말 같지만,
하나의 현상을 ‘말’의 주체가 다른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다. 고객의 고통과 감정을 반영한 ‘버스 요금 인상’과 이용승객의 불쾌감과 저항을 줄이기 위해 버스협회나 버스회사가 사용하는 ‘버스 요금 현실화’가 서로 다른 주체의 프레임을 반영한 말이다.
즉 ‘버스 요금 인상’은 고객의 입장에서, ‘버스 요금 현실화’는 버스 회사나 관리하는 당국자들이 사용한 말이다. 개인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언어로 나타난다. 어떤 세계관을 가질 것인가? 각자의 존재에 걸맞게 자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정리하면 인간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자각은 말에서 시작하고, 억압과 지배의 상태를 벗어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자하는 ‘피지배자’의 말은 가장 먼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자를 향하는 활이 되어야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는 다시 그 존재가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독일의 법철학자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했다. 자유롭지 않은 자의 최종 목적은 정치와 경제에서 완전한 자유이지만 이것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반복하면 한 개인이 누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다른 이들의 희생으로 얻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르디외는 불평등의 직접 원인 가운데 하나인 ‘세계화’를 “필연적인 경제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들을 탈정치화하고 경제세력들을 ‘해방’시켜 시민과 정부를 그 해방된 경제법칙에 따르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피할 수 없는 숙명 같다는 인상은 지속적인 선전의 결과’라고 얘기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세계화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세뇌’탓이라고 주장한다.
위에서 본 것 같이 언어는 단지 정체성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스스로 변화하는 힘의 도구, 즉 사람들과 유대를 맺거나 분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언어는 강력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다.
정리하면 ‘헬조선’의 해법은 ‘헬(hell, 지옥)’을 겪는 사람들이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은 ‘흙수저’에게는 ‘지옥’이지만,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에게는 자손만대로 지속해야할 ‘유토피아(천국)’이다. 그들에게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은
‘흙수저’에게는 ‘노동개악의 킬링타임’이다. 공공성을 가진 대부분의 공직선거에서 조차도 ‘일자리 창출’ 공약을 쉽게 말한다. 하지만 ‘흙수저’에게는 있는 ‘일자리 보장’이 먼저이다. 어차피 지금 현실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기울어진 저울’이다. ‘피지배자’인 ‘흙수저’에게는 절망과 불평뿐이다. 그러나 ‘흙수저’는 절망과 불평보다는 이제라도 일상의 ‘말’이 가진 힘을 자신의 정치력으로 바꾸고, 자기의 존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현대의 정치 제도를 ‘대의 민주주의’라 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투표는 총알보다 무섭고, 힘이 세다.’ ‘바우만’은 ‘자기 주머니 사정’대로 투표하는 것이 불평등을 벗어나는 해법이라 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주인의식이 이 ‘헬조선’을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정경분리를 얘기하지만, 현대사회의 바탕에는 정치와 경제는 진정으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실체가 숨어있을 뿐이다. 정치는 경제의 현상이고, 경제는 정치의 본질이다. 본질이 바뀌어야 현상이 바뀐다. 몇 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했다. 정치민주화는 경제 민주화라는 필요조건이 선행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자, 공동체 일에 관심 없는 사람을 ‘이디어테스(idiotes)’라고 불렀다. 이 말은 현대의 ‘바보’나 ‘멍청이’를 뜻하는 ‘idiot’의 어원이다.
동양 역시 과거에 백성을 가리키던 ‘시민, 국민, 인민’의 민(民)의 어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원래 포로나 노예의 반항 능력을 줄이고자 한쪽 눈을 예리한 침으로 찔러 상하게 한 모습으로부터 ‘노예’라는 뜻‘을 나타내고, 또 다른 하나 ’민(民)의 고어(古語)‘의 뜻은
‘아마도 싹이 나서 무성해지는 모양을 상형’(설문해자)한 것이다. 이제 ‘헬조선’을 느끼는 당신이, ‘헬(지옥)’을 벗어나는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한 쪽 눈을 감은 노예로 살 것인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자신의 말을 무성하게 하는 자유민으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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